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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주변 주민들이 암에 걸릴 정도로 방사능이 심하다면, 정작 발전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왜 암에 안 걸리나?"

 

핵발전소 지역 주민 중 갑상선암 환자 618명이 핵발전소의 방사능 때문에 갑상선암에 걸렸다며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2015년 이후로 종종 나오는 이야기다. 사실을 근거로 한 일종의 논리적 반박인 셈.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핵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암이나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는 없는 모양이구나' 아니면, '핵발전소 방사능 피폭으로 암이나 백혈병에 걸렸다고 인정받은 사례가 없는 모양이구나'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엄청난 규모로 방사능이 유출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당시에도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하니, 큰 사고가 없었던 우리나라 핵발전소의 경우는 방사능으로 인해 암이나 백혈병에 걸리거나 사망한 경우가 없을 만도 하다는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과연 그런가?

답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핵발전소에서 일하다가 방사능에 피폭되어 백혈병과 암에 걸렸다고 국가로부터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이 분명히 존재해왔고, 이로 인해 사망한 분들도 분명히 존재해왔다. 다만 조명받지 못했을 뿐이다.  

 

다음은 요약적으로 제시한 그 사례들이다.  

 

 

2000년, 최초의 방사능 피폭 암 발병 인정 - 울진핵발전소 기계용접공 정OO씨

 

최초로 산재 판정을 받은 이는 울진 핵발전소에서 기계용접공으로 일했던 정OO씨다. 정씨는 핵발전소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한국전력 자회사 한전기공(지금의 한전KPS)에 1987년 입사하여 1997년까지 울진 핵발전소 현장에서 용접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1989년 이후 방사선 피폭 구역에 529회를 출입하였으며, 1997년 9월 예방계획 정비 공사에 참여했다. 1997년까지 TLD(열형광선량계 : 방사선량계측기)로 측정한 방사선 누적선량은 18.53mSv(밀리시버트)였고, 가장 많이 피폭된 해는 1994년으로 5.8mSv였다. 

정씨는 1997년 11월에 급성골수성백혈병 확진을 받았고, 1999년 5월에 사망했다. 유족은 정씨가 사망한 후 산재보상보험을 신청했지만, 회사 측에서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은 업무상 질병 여부 판정을 요구했고, 2000년 12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병심의위원회는 "핵발전소의 정비과정에서 방사선에 피폭된 것이 확인되었고, 방사선 피폭에 의해서 급성골수성백혈병 등 혈액암이 비교적 소량 피폭으로도 발생할 수 있음이 알려져 있고, 다른 알려진 유해요인에 노출된 적이 없으며, 피폭선량이 소량이지만 미국의 인정기준인 원인적 인과확률(Probability of Causation, PC) 의 95% 신뢰상한 값에 해당되어 미국의 기준을 참조하여 업무 관련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이로써, 정씨는 한국의 핵발전소 노동자들 중에서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암과 백혈병이 발병한 최초의 공식적인 산업재해 피해자가 되었다. 

당시 이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故) 임현술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 글을 아래에 첨부한다.  

1호 산재인정 의사의 회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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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방사능 노출로 인한 췌장암 사망 황OO씨 - 2008년 서울고법 판결로 10년만에 산재 인정 

 

1975년부터 24년동안 핵발전소에서 방사선 취급업무 등을 해오면서 상당량의 방사능에 노출되었던 황OO씨는 1999년 췌장암으로 사망했고,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재해 신청을 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거부했고, 유족은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패소.

그러나, 2008년 서울고법 특별8부(재판장 최병덕 부장판사)는 원심을 취소하고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황씨는 방사선관리구역에 출입하면서 방사능 오염사고 등을 처리하는 등 피폭량이 상당하고, 이에 비춰보면 방사선 피폭이 췌장암 발생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황씨의 24년간 누적피폭량은 58.74mSv로 국제방사선방호학회가 제시한 방사능구역 작업자 허용선량(5년간 100mSv)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학회가 제시한 허용선량은 암 발병과는 큰 관련이 없으며, 췌장암 발생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 “달리 발병원인이 될 만한 요인이 없었으므로 방사선 피폭이 적어도 하나의 원인이 됐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참고로, 일반인의 연 평균 피폭 허용선량은 1mSv로, 방사능구역 작업자의 피폭 허용선량은 일반인의 20배이다. 

 

 

2008년 고리핵발전소 11년 근무 변OO씨 백혈병으로 사망, 이후 6년만에 산재 인정받아

 

핵발전소에서 11년간 근무하다, 2006년 급성골수성백혈병 확진 판정을 받은 변OO씨는 2008년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산재 판정을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 부산동부지사는 청구를 거부했다. 3(인정) : 4(불인정)이었다. 

변씨는 고리핵발전소에 1995년 3월14일 입사해 방사선 관리구역내 기기점검 및 관리, 발전소 안전관련 기기고장, 사전 점검시 작업조건 형성, 방사성 폐기물 이송업무, 방사선 관리구역 환경개선 사항 점검업무를 2006년 8월까지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방사선에 16.51mSv 피폭되었다. 방사선 관리구역 출입한 시간은 3211.8시간이며 출입횟수는 총 1,837회였다.

1999년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정OO씨의 누적 피폭량 18.5mSv와 비슷한 수치였고, 병명도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같았지만, 산재 인정을 받은 정씨와 달리 변씨는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변씨의 부인과 대면했던 한 의사는 변씨의 백혈병 발병원인에 대해 “근무환경이 백혈병이 발병할수 있는 충분한 여건에 있었다”고 소견을 밝혔다.

결국 변씨의 유족은 소송에 들어갔고, 법원의 조정 결정으로 산재 인정을 받아냈다. 피해자가 사망한 지 6년만이었다.  

 

 

21년간 98mSv 피폭, 췌장암 사망 정OO씨, 5년만에 소송으로 산재 인정

 

1983년부터 2004년까지 21년간 고리핵발전소에서 일하면서 98.23mSv에 달하는 많은 양의 피폭을 당한 정OO씨는 췌장암과 위암 진단을 받고 2006년에 사망했다. 그가 기록한 누적피폭량은 이전에 산재 인정을 받은 사례들보다도 현저히 높은 피폭량이었음에도 근로복지공단은 방사능구역 작업자의 1년 피폭 허용선량 20mSv의 21배인 420mSv에 미달한다는 이유만으로 산재 인정을 거부했다. 

정씨의 유족은 소송을 냈고, 5년만인 2013년에 부산고등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아 산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처럼 핵발전소 운영사인 한국전력측과 산업재해 판정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기본적으로 백혈병이나 암으로 인한 사망과 방사능 피폭 간의 연관성을 부정해왔고, 피해자와 가족들은 오랜시간 고통 속에서 법정다툼을 벌여야 했다.

이런 일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월성핵발전소 압력관 교체작업 후 혈액암 발병, 그러나 엇갈린 산재 판정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한전KPS 소속 2년 계약직 노동자로 일했던 이OO씨와 한전 KPS의 하청업체 A사에 단기 계약직 노동자로 일했던 김OO씨는 월성 핵발전소 원자로 압력관 교체작업에 동원되었다. 핵연료봉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고방사능 구역에서의 작업이었다.  

2년간의 작업 후, 두 사람은 혈액암에 걸렸다. 이씨는 2017년 혈액암의 일종인 골수형성이상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았고, 김씨는 2013년에 혈액암의 일종인 호지킨림프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지금까지 계속 투병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이씨는 작업 기간동안 총 42.16mSv, 김씨는 2009년 7월 ~ 2010년 3월까지 9개월간 21.32mSv 피폭됐다.

이씨는 2019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판정을 받았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비롯한 백혈병이 50mSv 이하의 저선량 피폭에도 발생 가능하다는 역학적 연구가 있으며 미량이지만 내부 피폭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은 작업 중 방사선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발병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업무와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산재 판정을 받지 못했다. 호지킨림프종이 저선량 방사선 피폭으로 발생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씨는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고, 현재 항소 중이다. 

 

 

멀리는 2000년도부터 가까이는 지금까지 핵발전소 노동자들은 암과 백혈병에 걸려도 산재 인정을 곧바로 받지 못하고 지난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100mSv 이하 저선량 피폭으로 인한 암 발병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핵산업계와 원자력 학계의 완강한 고집으로도, 핵발전소 노동자들이 방사능 피폭으로 암에 걸리고,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영원히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반인 피폭허용량보다 최대 50배나 높은, 방사능구역 작업자의 피폭허용량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박찬호 반핵의사회 운영위원의 글을 첨부한다. 많은 참고가 되시기를.

한국의-선량규제-현황과-문제점.-박찬호-선생님.-2019.9.2.-반핵의사회-8월9월-소식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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